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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사회공헌자 박영하


박영하 국가사회공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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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교육계의 거목◑

 국가사회공헌자 박영하 박사는 1927년생으로 1945년 평양 제3중학교를 거쳐, 1950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6?25전쟁에는 군의관으로 평양탈환작전에 참전한 참전용사로서 의술발전과 인재양성에 한평생을 바쳤다.

 박사는 중령으로 예편한 후 서울 을지로에 ‘박영하 산부인과병원’을 개원한 뒤 1967년 병원을 국내 최초로 공익법인으로 전환해 의료의 공익화를 선도적으로 주도했다. 이후 1981년 대전을지병원(현재 을지대병원), 1995년 서울 하계동 을지병원, 2001년 금산을지병원, 2009년 서울 강남을지병원을 차례로 개원해 국내 굴지의 의료원으로 성장시켰다.

 뿐만 아니라 효자로 알려진 박사는 학교경영에도 커다란 관심을 가졌다. 이는 선친 박봉조 선생의 유업에 따른 것으로 교단에서 교편을 잡았던 선친은 아들에게 인재양성의 꿈을 이뤄줄 것을 당부했었다. 박사 또한 우리나라 의학발전을 위해서는 의료계 인재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여 교육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아 1983년 학교법인 을지학원을 설립하여 서울보건대학(현 을지대 성남캠퍼스)을 인수했으며, 1996년에는 대전 용두동에 을지의과대(현 을지대 대전캠퍼스)를 설립했다. 서울보건대학과 을지의과대학이 2007년 통합하면서 국내 유일의 ‘보건·의료 특성화 종합대학’인 을지대학교로 거듭났다

 평소 의사로서의 책임과 소명을 강조해 온 박사는 을지로 산부인과 개원 당시 "의사는 한시도 환자를 떠날 수 없다"라며 병원 입원실을 가정집으로 개조해 일요일에도 오후2시까지 환자를 돌봤던 일에서 그의 책임정신을, 1994년 일본에서 홀로 투병 중이던 국민영웅 프로레슬러 김일 선생을 병원으로 모셔와 2006년 임종 때까지 병원에서 모시며, ‘의리’를 지켰던 일화는 박사의 나눔과 봉사정신을 엿볼 수 있다.

 정부는 박사에게 우리나라 의학발전과 인재양성의 공로로 1999년 27회 보건의 날 국민훈장 ‘모란장’, 2008년 36회 보건의 날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으며,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29호에 안장하여 고인의 공훈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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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관리 담당 : 선양팀 042-820-7063 최종수정일 : 201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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