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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현충인물

6월의 현충인물

김성은 참전 · 무공수훈유공자


김성은 해병중장
사이버참배
 믿음의 명장, 통영상륙작전(대한민국 최초 단독 상륙작전)의 주역

 이달의 현충인물 김성은 장군은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19세의 나이로 만주 하얼빈 농대를 수료한 엘리트이다. 장군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해군병학교를 졸업하고 해군 참위(소위)로 임관된 후 해병대사령부 창설 당시 참모장으로 보임되어 해병대의 육성 강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김 장군은 해병대 창설 직후 공비토벌작전에 토벌지휘관으로 임명되어 지리산에 근거한 진주일대의 공비와 제주도로 이동해 한라산일대의 공비를 소탕한다. 해병대 창설 1년 뒤 6?25전쟁이 발발하자 장군은 마치 준비하고 기다렸다는 듯 마산 진동리와 통영 전투에서 첫 승리의 승전보로 피란길에 나섰던 국민들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안겨 주었다. 창설 이래 최대 전공을 세운 진동리지구전투에서는 남하하는 북한군 최정예 사단의 공격을 완전히 저지 격퇴하여 해병대 최초의 반격 작전으로 큰 전과를 올렸다. 이 전투로 전 장병 1계급 특진이라는 영예도 안았다.

 특히, 김 장군의 명성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대한민국 최초 단독 상륙작전인 통영상륙작전을 통하여 더욱 드높아졌다. 통영상륙작전은 현지정찰을 통해 거제도에서 적을 저지한다는 애초의 계획을 변경, 과감하게 직접 통영으로 진출하여 적 대대를 섬멸하고, 전략적 요충지인 통영을 확보함으로써 적의 마산, 진해에 대한 해상을 봉쇄하는 전과를 거두게 된다. 6?25전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렸던 종군기자 마거릿 히긴스는 이를 ‘귀신 잡는 한국 해병’이라는 제목으로 ″귀신도 잡을 만큼 놀라운 일을 했다″고 찬사를 보내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 해병의 살아있는 신화가 되었다.

 김 장군은 전선을 종횡무진 누비던 전투능력 외에도 엄습하는 죽음 앞에 기진맥진한 부하들의 참호를 일일이 찾아 독려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도 갖추었다. 이러한 장군의 전장 장악 능력과 인간적인 인성은 당시 명명된 `김성은 부대'의 단독작전 성공을 가능하게 하였다.

 6·25전쟁이 끝난 후에는 해병학교장에 임명되어 정예해병 육성과 국방부장관으로 재임 시에는 한국군 최초로 구축함을 도입하고, 합동참모본부를 설치하는 등 대한민국 자주국방을 위해 주력하였다.

 정부는 김성은 해병대사령관(국방부장관)에게 구국 · 애국 ·호국의 위대한 업적으로 무공훈장(태극·을지·충무)을 수여했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제1묘역 38호에 안장하여 고인의 공훈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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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관리 담당 : 선양팀 042-820-7063 최종수정일 : 201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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