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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현충인물

6월의 현충인물

윤영하 해군소령


윤영하 해군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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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현충인물로 선정된 제2연평해전의 영웅 윤영하 해군소령은 1973년 11월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한민국 해군 장교 출신인 아버지(윤두호님)와 해군사관학교 32년 선후배 사이로 대를 이어 대한민국 바다를 지킨 영예로운 해군 명문가 충무공의 후예다.

윤 소령은 우상인 아버지와 같은 해군의 꿈을 꾸며 자랐다. 전역한 후 해운회사에 근무하던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3년 동안 영국 런던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생활하다 귀국하여 송도고등학교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96년 해사 50기로 대한민국 해군으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그는 해군 계봉함 갑판사관을 시작으로 해군 원산함 정훈보좌관, 해군 초계함 제천함 작전관으로 근무 하다 2001년 1월 참수리급 고속정 참수리 357호의 정장에 임명됐다.

윤 소령은 모범적으로 승조원들을 이끌며 성품 또한 따뜻하고 차분하여 주위의 신임이 높았다고 한다. 해사 동기인 최민석 예비역 소령은 “재학 당시 진중한 성격으로 그(윤영하 소령)에게 고민을 상담하는 동기들이 많았다”고 회상하며 그리워했다.

2002년 6월 29일 월드컵 3.4위전(한국vs터키)을 앞두고 세계의 이목이 대한민국에 집중된 시기 북한은 제1연평해전(1999년 6월 15일)에 이어 북방한계선(NLL)을 또다시 침범해 왔다. 이에 대응하고자 참수리 357호, 358호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해군 고속정 253편대가 긴급 출동하여 대응기동과 경고방송을 했으나 북한 경비정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우리 참수리 357호를 선제 기습으로 공격하여 제2연평해전이 발발했다.

이 치열한 교전은 북한군 경비정이 화염에 휩싸인 채 도주하며 우리 해군이 대한민국 서해를 지켜낼 수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현장을 지휘하던 윤영하 소령과 다섯 분의 용사가 전사하고 19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등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윤영하 소령의 살신 보국 정신의 공로를 기려 1계급 특진과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으며, 호국의지를 계승하고자 2007년 6월 28일 참수리 고속정을 대체한 차기 고속함 1번함을 윤영하함으로 명명하고 2009년 6월 2일 실전 배치시켰다. 또한 불굴의 투지와 호국정신의 업적을 기려 국립대전현충원 제2연평해전 전사자 묘역에 안장하여 예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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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관리 담당 : 선양팀 042-820-7063 최종수정일 :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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